[일상스토리]아들의 생일 - 시작하는 마음

2025-02-27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는 NGO. 행복한가



어릴 적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를 만날 때면 그 돌멩이는

5분 남짓 걸리는 하굣길의 길동무가 되어주곤 했었다.

운동화의 앞코로 툭툭 차면서 집 대문 앞까지 데리고 가는 거다.

국민학교 5학년때까지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집까지 가는 길에 논밭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때문에 발끝의 강약조절에 조금만 실패해도 내 길동무가 논두렁에 빠지기 일쑤여서 매번 하굣길에 새로운 길동무를 만날 때마다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고 무사히 집까지 잘 데려가야겠다는 각오를 했었다.

그런 다짐 끝에 어느 날부터인가 돌멩이에게 작은 소망을 함께 담기 시작했었다.

집으로 잘 데려가면 내일 쪽지시험에서 100점을 맞을 거야. 무사히 함께 잘 도착하면 오늘은 아빠가 치킨을 사 올 거야.라는 밑도 끝도 없는 소망을 담았었다.

그 소망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문을 들어설 때 이미 소망 따위는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내게는 길동무와 함께 머나먼 여정을 잘 마쳤다는 기쁨만으로 충분했었던 것 같다.

 

어릴 적 그 습관 탓일까.

나는 자꾸 뭔가를 시작할 때나 어떤 상황에 의미부여를 하곤 한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그 의미부여가 지금 이 상황에선 건강이나 안위와

관련된 바람으로 의도치 않게 신파성을 띄곤 해서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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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귀여운 막둥이 은우의 생일이다.

마침 어제 방학식도 했고, 생일날 방학까지 선물 받은 막둥이의 얼굴은 아침부터 연신

싱글벙글이다.

본격적인 생일파티는 저녁에 하기로 하고, 미리 주문해 놓은 은우가 제일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미역국과 함께 내놓았더니 먹성 좋은 은우는 게눈 감추듯 맛있게 한 그릇 뚝딱 비우고 게딱지에 밥까지 싹싹 비벼 맛있게 먹는다.

감기기운이 있다면서도 아침부터 식욕도 참 야무지다.

우리 막둥이, 모든 게 참 귀하고 이쁘다.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자니, 또 괜스레 눈물이 올라와 일어나서 설거지를 한다.

우리 은우 언제 이렇게 커서 벌써 6학년 형아가 되었을까.

내년에는 중학생이 될 텐데.

교복 입은 멋진 모습도 꼭 내 눈에 담을 수 있겠지...



진단받고 남편의 생일 그리고 내 생일, 은우의 생일을 맞았다.

3월에 큰딸 세연이 생일, 그리고 6월에 둘째 유진이의 생일이 기다리고 있다.

올해도 내년에도 그렇게 늘 함께 할 수 있겠지.

생일, 그게 뭐라고.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고, 특별할 것 없다지만…

이번이 내가 챙겨줄 수 있는 마지막 생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물 땐 어미의 마음은

지치지도 않고 매번 이리도 산산이 찢긴다.

미리 기억해 주고 특별히 좋아하는 것들로 차려낸 더 따뜻한 밥 한 끼 먹이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다.

매번 돌아오는 생일이라지만 오래오래 내 새끼들 따순 밥 해먹이고 싶다.

그래, 이렇게 또 한 번 삶을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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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식물이든 뭐든 뭘 좀 키워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식물 키우기엔 영 젬병이라 혹시라도 죽이게 될까 겁이 나서 시작을 못했었다.

마지막 잎새처럼 또 되지도 않는 의미를 부여해 놓고 잘 자라다가 혹시라도 죽어가는

식물들을 볼 때면 우울해질까 겁이 나기도 했고.

요즘 나는 너무 많은 것에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들은 내 삶에 잠시 머물며 작은 기쁨만을 안겨주는 걸로 충분할 것이다.

눈에 예쁜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쓰임이 있는 걸로 키워보고 싶어서 요즘 자주 먹고

싶어지는 상추를 키워보기로 한다.

인터넷을 뒤져 집에서 채소 기르기 통을 큰 걸로 2개 주문했다.

혹시 상추농사를 실패할 경우 플랜 B로 고추농사로 갈아타기 위해 미리 깊은 통으로

주문한다.

그리고 집에서 제일 볕이 잘 드는 곳에 놓여 있던 턴테이블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제일 좋은

자리에 화분 두 개를 나란히 모셔두었다.

최고급상토라는 흙도 주문했다.

흙을 만져보니 느낌이 보송보송했다.

왠지 씨앗도 영양분을 듬뿍 머금고 잘 자라날 것 같다.

첫 화분에는 건조한 흙에 구멍을 조금씩 내고 씨앗을 3,4개씩 넣어주고 물을 주었다.

흙이 부드러워서 그런지 물을 머금으면서 흙과 씨앗이 한데 섞이는 느낌이라 어떻게 싹이

날지 모르겠다.

두 번째 화분에는 먼저 물을 충분히 부어 전체흙을 촉촉하게 만들어놓고 구멍을 팠다.

그리고 씨앗을 넣고 살살 흙을 덮어준 뒤 표면에만 물을 살짝 더 뿌려주니 안정감 있게

마무리되었다.



제일 쉬운 편에 속하는 상추 키우기라 반이 죽어도 반은 살아 나와서 싹을 틔우겠지.

뭐 다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

씨앗을 다시 뿌리면 될 터이고, 안되면 내게는 고추씨앗이 또 기다리고 있으니까.

고추가 안되면 또 다른 걸 심으면 되고. 될 때까지 해볼 작정이다.

 

터무니없는 의미부여 따위는 하지 않으려 한다.

상추는 상추일 뿐이고 돌멩이는 돌멩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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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키우기든 뭐든 새롭게 시작하고 실패하면 또다시 시도하면 되는 거고.

그렇게 연습하다가 몇 년 후에 전원주택에 이사 가면 상추정도는 쉽게 키울 수 있는 준비된

영농인이 되어있겠지.

그땐 넓은 텃밭에서 여러 작물을 잘 키워서 더 신선한 재료로 더 정성스럽게 우리 아이들

밥상 차려줘야지.




by. 주혜 https://brunch.co.kr/@toiletcool/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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