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등을 해야만 할까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료를 제치고 먼 저 승진을 해야 할까요? 인간성을 상실하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할까요?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내가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네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나란 그 자체가 없으며, 오직 '나너'의 나와 나-그것'의 나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는 한, 코로나19도 함께 견뎌야 하고, 태풍도 미세먼지도 함께 극복해야 하는 생존 공동체인 것이죠. 나와 네가 비록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은 종교적인 사랑 이전에도 삶의 여러 현상을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은 상호 같은 공간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등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내가 처했던 경우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 주변 사람이 하는 말과 태도를 관찰하노라면, 마치 내가 그 상황에서 표현했을 때와 똑같은 표현, 거짓말, 몸짓과 감정표현을 하고 있음에 놀란 적이 없는가요? 인간은 99% 이상 똑같은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사용하는 단어가 다를 뿐이죠. 이처럼 모든 생명체는 생명과 존재 방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타인과 분리된 '나만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도둑은 제 자식을 돌보지 않아야 하고, 가족이나 민족도 헛된 공동체일 것입니다.
한국사회의 무한 경쟁이 불신을 키우고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는 지적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부는 아니라도 많은 서양 사람들은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쳐다보거나 스쳐도 서로 목례를 해주고 미소로 응대해 줍니다. 우리는 길에서 부딪히거나 나를 쳐다보는 사람에게 인상을 씁니다. 얼마나 타인을 못 믿고 사는지. 정말, '진짜?'라는 표현이 대화 중에 굉장히 자주 사용 되죠.
개인의 입장에서는 더 큰 물질과 권력을 얻는 것이 성공일지 모르지만, 공동체의 누군가는 나의 성공과 질주 때문에 우울감이나 슬픔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최고의 대학에 가고자 하고, 더욱 큰 집에 살려고 하면, 우리를 태운 한반도가 전속력으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나타나는 전 세계 1위의 부정적인 현상들이 이를 대변하고 있죠.
최근에는 영아나 유아 학대 문제가 새로운 사회적 질환으로 추가 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이길 힘을 갖고 있더라도 먼저 져주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모두가 이기려고만 한다면, 남는 것은 상호 불신과 개인적 우울감의 증가뿐이겠죠.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경우, 그 외의 다른 분야는 포기한 경우가 많습니다. 최고의 대학을 나와서 전문지식이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아니죠. 명품 옷을 입고 고급 차를 탄다고 해서 그 사람의 내면 정신세계가 더욱 아름다울까요? 오히려 지금의 부를 뺏기지 않으려고, 혹은 더 가지려고 전전긍긍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모든 꽃은 10일 지나면 시든다‘라는 말처럼 어떤 부, 권력, 명예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가 이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주죠. 다만 힘 있는 사람들이 믿지 않을 뿐입니다.
나만 잘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인류가 오랜 세월 맹수의 공격과 자연의 횡포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 배경에는 상호 협동과 협조의 자세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처럼 협동심 대신 경쟁심과 상호 불신이 매일 커지면 결국에는 내부에서의 해체가 진행될 것 입니다.이미 우리 사회에는 내면의 약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해체된다면 나만의 성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너를 나만큼 존중하겠다는 결심을 실천하기가 어렵지만, 매 일 마음을 다짐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길이 모두가 살길이기 때문이죠. 새끼 양과 새끼 사자가 함께 놀고, 흑인 아이와 백인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세상을 만들어야 갑니다. 백신으로도 이길 수 없는 희귀질환과 기후변화가 인류를 덮치기 전에, 서로 배려하고 아껴야 합니다. 다른 나라하고만 "같이 갑시다" 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 속의 주변 사람들과 먼저 함께 가야 하겠죠. 오늘도 다시 한 번 ‘함께’ 나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위 글의 저작권은 행복한가에 있으며 모든 페이지 내용의 소유권은 행복한가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을 공유하실 때에는 글 하단 또는 제목에 '행복한가'를 반드시 표기 바랍니다.)
꼭 1등을 해야만 할까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료를 제치고 먼 저 승진을 해야 할까요? 인간성을 상실하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할까요?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내가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네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나란 그 자체가 없으며, 오직 '나너'의 나와 나-그것'의 나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는 한, 코로나19도 함께 견뎌야 하고, 태풍도 미세먼지도 함께 극복해야 하는 생존 공동체인 것이죠. 나와 네가 비록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은 종교적인 사랑 이전에도 삶의 여러 현상을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은 상호 같은 공간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등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내가 처했던 경우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 주변 사람이 하는 말과 태도를 관찰하노라면, 마치 내가 그 상황에서 표현했을 때와 똑같은 표현, 거짓말, 몸짓과 감정표현을 하고 있음에 놀란 적이 없는가요? 인간은 99% 이상 똑같은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사용하는 단어가 다를 뿐이죠. 이처럼 모든 생명체는 생명과 존재 방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타인과 분리된 '나만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도둑은 제 자식을 돌보지 않아야 하고, 가족이나 민족도 헛된 공동체일 것입니다.
한국사회의 무한 경쟁이 불신을 키우고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는 지적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부는 아니라도 많은 서양 사람들은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쳐다보거나 스쳐도 서로 목례를 해주고 미소로 응대해 줍니다. 우리는 길에서 부딪히거나 나를 쳐다보는 사람에게 인상을 씁니다. 얼마나 타인을 못 믿고 사는지. 정말, '진짜?'라는 표현이 대화 중에 굉장히 자주 사용 되죠.
개인의 입장에서는 더 큰 물질과 권력을 얻는 것이 성공일지 모르지만, 공동체의 누군가는 나의 성공과 질주 때문에 우울감이나 슬픔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최고의 대학에 가고자 하고, 더욱 큰 집에 살려고 하면, 우리를 태운 한반도가 전속력으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나타나는 전 세계 1위의 부정적인 현상들이 이를 대변하고 있죠.
최근에는 영아나 유아 학대 문제가 새로운 사회적 질환으로 추가 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이길 힘을 갖고 있더라도 먼저 져주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모두가 이기려고만 한다면, 남는 것은 상호 불신과 개인적 우울감의 증가뿐이겠죠.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경우, 그 외의 다른 분야는 포기한 경우가 많습니다. 최고의 대학을 나와서 전문지식이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아니죠. 명품 옷을 입고 고급 차를 탄다고 해서 그 사람의 내면 정신세계가 더욱 아름다울까요? 오히려 지금의 부를 뺏기지 않으려고, 혹은 더 가지려고 전전긍긍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모든 꽃은 10일 지나면 시든다‘라는 말처럼 어떤 부, 권력, 명예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가 이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주죠. 다만 힘 있는 사람들이 믿지 않을 뿐입니다.
나만 잘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인류가 오랜 세월 맹수의 공격과 자연의 횡포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 배경에는 상호 협동과 협조의 자세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처럼 협동심 대신 경쟁심과 상호 불신이 매일 커지면 결국에는 내부에서의 해체가 진행될 것 입니다.이미 우리 사회에는 내면의 약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해체된다면 나만의 성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너를 나만큼 존중하겠다는 결심을 실천하기가 어렵지만, 매 일 마음을 다짐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길이 모두가 살길이기 때문이죠. 새끼 양과 새끼 사자가 함께 놀고, 흑인 아이와 백인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세상을 만들어야 갑니다. 백신으로도 이길 수 없는 희귀질환과 기후변화가 인류를 덮치기 전에, 서로 배려하고 아껴야 합니다. 다른 나라하고만 "같이 갑시다" 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 속의 주변 사람들과 먼저 함께 가야 하겠죠. 오늘도 다시 한 번 ‘함께’ 나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위 글의 저작권은 행복한가에 있으며 모든 페이지 내용의 소유권은 행복한가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을 공유하실 때에는 글 하단 또는 제목에 '행복한가'를 반드시 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