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토리]가족이라는 이름의 밀도

2026-10-01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는 NGO. 행복한가



사람의 계절도 흐르다 보면 어느덧 잎을 떨구고 속을 채우는 가을의 문턱에 서게 된다

젊은 날의 모임이 활기찬 소음과 화려한 외출이었다면, 나이가 들어 마주하는 가족 모임은

마음의 구석구석을 온화하게 비추는

차분히 내려앉은 저녁노을 같다

지난달, 멀리 미국 LA에서 건너온 시누이와 밀린 안부를 나누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늘은 또 그 시누이의 아들이 찾아왔다

 

내 아들 가족과 서울의 큰 시누이와 조카들

모두 13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풍경

이 풍경은 단순히 '사람이 모였다'는 물리적 사건을 넘어, 서로의 삶이라는 실타래를 다시 한 번 촘촘하게 엮는 소중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관계의 부피를 줄이고 본질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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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시댁이나 친정의 부름이 때로는 의무감으로 다가와 어깨를 짓누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초대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익숙한 얼굴과 목소리들이 쏟아질 때

정적 속에 머물던 공기는 비로소 고동치기 시작한다.

 

가족은 각자의 궤도를 돌던 행성들이 잠시 멈춰 서서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는 유일한 정거장이다

 

가족 모임의 백미는 식탁 위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의 밀도에 있다

장성한 아이들의 든든한 어깨와 그 곁을 지키는

어른들의 미소, 그리고 종횡무진 누비며 생명력을 내뿜는 손주의 웃음소리는 그 어떤 수식어보다도 강렬한 감각적 비유가 되어 가슴에 박힌다.

 

미국에서 온 조카의 얼굴에서 시누이의 젊은 시절을 발견하고, 장성한 조카들 모습에서 유년의 얼굴들을 추억하는 일

그것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우리 가족만의 색채를 덧칠하는 작업이다

큰 시누이와 나누는 담소는 오랜 시간 묵혀둔 장맛처럼 깊고 구수하다

서로의 주름살을 읽어내며, 우리는 비로소 혈연이라는 이름의 견고한 연대감을 확인한다

 

가족 모임은 불필요한 수식어가 필요 없는 시간이다.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빈틈을 묵묵히 채워주기 때문이다

시댁이든 친정이든, 그곳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에 충분히 안전한 요새이다

모임이 끝나고 모두가 떠난 자리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오겠지만,

그 고요는 이전의 적막과는 다를 것이다

온기가 머물다 간 자리마다 몽글몽글한 추억의 씨앗이 심어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모임이 보석처럼 귀해지는 이유는,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의 유한함을 알기에,

그 순간의 밀도가 더욱 높아지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났다

이처럼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가족의 얼굴은 늘

변함없는 볕이다

 

오늘 하루

그 환한 볕 아래서 마음껏 따스했다

가족이라는 숲이 있어 나의 노년은 결코 황량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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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명심 https://brunch.co.kr/@light-mind/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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