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토리]겨울 햇살 아래서 생각한 것들

2024-12-29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는 NGO. 행복한가




코트를 입고 목도리와 털모자를 걸친다.

둥근 부츠 코가 뭉툭하게 아침 햇살을 받아낸다.

 

두꺼운 양말 안에서

발가락을 한껏 오므렸다가 펴고 부암동 골목을 걷는다.

담장 너머 두툼한 나무를 올려다본다.

고개를 쳐들고 속눈썹에 내려앉는 빛의 육각형 산란을 본다.

모서리가 부서진 돌계단에 파묻힌

꼬마 자갈들을 들여다본다.

빛의 입자가 조금씩 굵고 진해진다.

 

가슴속에서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것이

조금씩 나를 적시는 것을 느낀다.

흐르는 시간에도, 발걸음에도,

천진하고 근심이 없는 드문 날이다.

 

그런 날은 슬며시,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어릴 때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는 게 아닐까?

속임수처럼, 거죽만 늙었을 뿐...

 

그렇게 드물게, 아주 드물게,

겨울 햇살 아래 시간이 변화시키려 했으나

실패한 변함없는 나를 만난다.

 

- 오소희 산문집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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