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최고 기부스타는 누구일까?
특유의 큰 눈, 좌중을 사로잡는 제스처, 개그맨 김영철의 대표격 성대모사로 영원히 고통(?)받고 있는 그녀.
그녀는 1962년 겨우 7살의 나이로 데뷔했다. 2024년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이한 그녀는 어느덧 67세의 나이가 되었다. 그녀가 지난 50여년간 사회에 기부해온 금액은 약 200억원대로, 대표 기부 연예인으로 잘 알려진 아이유, 유재석 등을 재치고 연예계 최고 기부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누구보다 기나긴 활동 기간 때문이었을 것이지만, 이는 그토록 긴 시간동안 변치 않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은 그녀의 사려 깊은 마음의 증거일 것이다.
<하춘화 데뷔앨범>
1966년 '아빠는 마도로스'라는 노래로 대히트를 친 기부왕의 정체는 바로 가수 하춘화다. 이 노래로 크게 성공하게 되면서 바야흐로 국민들을 사로잡는 ‘하춘화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하춘화의 50년 가수 인생을 돌아보면, 1970년대를 그녀가 평정했다고 평가받을 정도인데 나훈아, 남진과 같은 쟁쟁한 가수들 사이에서도 70년대 내내 최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전설적인 존재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노래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하춘화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수 한번 해 보라는 이야기를 항상 들어 왔다. 마침내 그녀의 재능을 믿고 하춘화의 온 가족이 함께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고, 이 때부터 그녀의 가수 인생이 시작 되었다.
서울에서 8개월 간 노래 레슨을 받은 하춘화는 '효녀 심청 되오리다'라는 노래를 발표하게 되면서 7세의 나이로 가수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히트곡이라 하면 물새 한 마리, 잘했군 잘했어, 영암아리랑, 난생 처음, 날 버린 남자 등등... 셀 수 없는 수많은 곡들이 사랑을 받아왔다. 무려 네 번이나 가요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온 국민이 사랑한 가수 하춘화. 1985년 남북 예술인 교환 공연에서는 남한의 대표가수로 하춘화가 북한에서 공연을 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공공연히 자리매김을 했다.
<故 이주일과 함께 한 무대>
최근 한 방송에서는 101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그녀의 기부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춘화는 가수 활동을 시작하면서 10대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회에 기부를 해오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곳들이 생기면 여기저기에 수익금을 전하다보니 50여년의 세월동안 약 200억원을 기부하게 된 것이다. 그녀에게 기부금에 대한 생각에 대해 묻자, 한 번도 그 돈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쓰라고 생긴 돈이라는 따뜻한 진심을 전했다.
19세부터 현재까지 50여년의 긴 시간 동안 이곳저곳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눔을 실천해온 그녀. 그 금액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액수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렇게 큰 액수보다 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그녀가 활동해온 생애 대부분을 나눔으로 사람들에게 보답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사람들로 하여금 받은 사랑을 단 한 순간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그렇게 긴 시간 나눔을 해 올 수 있었을 것이다.
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직도 혼잣말을 한다는 하춘화. 가족과 함께했던 추억속에서,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 속에서 그녀의 가치 있는 나눔은 계속해서 회자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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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최고 기부스타는 누구일까?
특유의 큰 눈, 좌중을 사로잡는 제스처, 개그맨 김영철의 대표격 성대모사로 영원히 고통(?)받고 있는 그녀.
그녀는 1962년 겨우 7살의 나이로 데뷔했다. 2024년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이한 그녀는 어느덧 67세의 나이가 되었다. 그녀가 지난 50여년간 사회에 기부해온 금액은 약 200억원대로, 대표 기부 연예인으로 잘 알려진 아이유, 유재석 등을 재치고 연예계 최고 기부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누구보다 기나긴 활동 기간 때문이었을 것이지만, 이는 그토록 긴 시간동안 변치 않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은 그녀의 사려 깊은 마음의 증거일 것이다.
<하춘화 데뷔앨범>
1966년 '아빠는 마도로스'라는 노래로 대히트를 친 기부왕의 정체는 바로 가수 하춘화다. 이 노래로 크게 성공하게 되면서 바야흐로 국민들을 사로잡는 ‘하춘화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하춘화의 50년 가수 인생을 돌아보면, 1970년대를 그녀가 평정했다고 평가받을 정도인데 나훈아, 남진과 같은 쟁쟁한 가수들 사이에서도 70년대 내내 최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전설적인 존재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노래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하춘화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수 한번 해 보라는 이야기를 항상 들어 왔다. 마침내 그녀의 재능을 믿고 하춘화의 온 가족이 함께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고, 이 때부터 그녀의 가수 인생이 시작 되었다.
서울에서 8개월 간 노래 레슨을 받은 하춘화는 '효녀 심청 되오리다'라는 노래를 발표하게 되면서 7세의 나이로 가수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히트곡이라 하면 물새 한 마리, 잘했군 잘했어, 영암아리랑, 난생 처음, 날 버린 남자 등등... 셀 수 없는 수많은 곡들이 사랑을 받아왔다. 무려 네 번이나 가요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온 국민이 사랑한 가수 하춘화. 1985년 남북 예술인 교환 공연에서는 남한의 대표가수로 하춘화가 북한에서 공연을 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공공연히 자리매김을 했다.
<故 이주일과 함께 한 무대>
최근 한 방송에서는 101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그녀의 기부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춘화는 가수 활동을 시작하면서 10대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회에 기부를 해오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곳들이 생기면 여기저기에 수익금을 전하다보니 50여년의 세월동안 약 200억원을 기부하게 된 것이다. 그녀에게 기부금에 대한 생각에 대해 묻자, 한 번도 그 돈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쓰라고 생긴 돈이라는 따뜻한 진심을 전했다.
19세부터 현재까지 50여년의 긴 시간 동안 이곳저곳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눔을 실천해온 그녀. 그 금액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액수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렇게 큰 액수보다 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그녀가 활동해온 생애 대부분을 나눔으로 사람들에게 보답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사람들로 하여금 받은 사랑을 단 한 순간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그렇게 긴 시간 나눔을 해 올 수 있었을 것이다.
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직도 혼잣말을 한다는 하춘화. 가족과 함께했던 추억속에서,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 속에서 그녀의 가치 있는 나눔은 계속해서 회자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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