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토리]상무님과 소양호 산책

2026-01-01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는 NGO. 행복한가




같은 팀 상무님, 대리님, 그리고 과장이었던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사이좋게 한날한시 회사를 그만두었다. 권고사직이었다. 동일한 사유로 퇴사한(퇴사된) 직원들이 타 부서에도 적잖았던 터라, 송별 술자리 스케일이 사내 전체 회식만큼이나 컸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는데도, 나도 그렇고 다들 먼 데 보듯 내내 목소리를 높였다. 퇴직자들은 운동장에 뿔뿔이 흩어져 있고, 살아남은(?) 이들은 학교 건물에서 창문 열고 고개만 내민 상황 같았다. 우리끼리 말할 때도, 교실에 있는 애들 부를 때도 큰소리를 냈다. 한자리에 있지만 서로가 멀었다. 아마 다들 비슷한 느낌이어서 그렇게나 크게 웃고 울고 욕하고 취하지 않았나 싶다.

상무님은 퇴사 후 춘천으로 이사했다. 언제 한번 놀러와요. 그러겠습니다. 상무님도 나도 빈말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내가 대리 때 상무님은 경기도 안산 대부도로 이사했었다. 팀원들한테 꼭 놀러오라 했고 우리는 진짜로 갔다. 여직원들은 점심 먹고 먼저 일어나고, 남자 직원들은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상무님 댁 앞마당 울타리 치기 작업에 동원되었다. 한여름이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텃밭 가장자리에 철망을 둘렀다. 그전에도 한 번 상무님 댁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상무님과 공저 집필을 준비하던 시기였는데, 상무님의 제안으로 출판사 편집자 님이랑 내가 자택으로 찾아가 기획 회의 겸 술자리를 가졌다. 그때도 일박을 했다.

춘천에서는 각자의 일정상 오후 반나절만 상무님과 함께 보냈다. 비싼 닭갈비를 먹고, 소양강댐 따라 난 길을 한참 걸었다. 전 직장 상사와의 소양호 산책. 입사할 때 나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젊은 상무님이 나를 면접하고 채용했다. 혼나고, 대들고, 어색하게 같이 외근 나가고, 다 까먹고 또 깔깔거리고, 점심 먹고 산책하다 사무실에 들어가고, 전 직원 야유회에 가서 신나게 게임하며 놀고, 그러고선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하고 격무에 시달리고, 이사한 집 놀러오라는 말에 얼씨구나 직원들끼리 주말에 모여 기어이 회사 상관 집을 찾아가고, 편안히 잠을 자고 밥을 얻어먹고, ⋯⋯. 상무님이랑 근무했던 지난 10여 년은 대략 그렇게 흘렀던 것 같다.

상무님과 소양호를 걷는다. 한 시간을 걷고 두 시간을 서성여도 우리가 복귀할 사옥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온통 물빛뿐이다. 상무님이 조심스레 말한다. 그래도, 아직은 회사를 다니는 게 낫지 않겠어요? 고정급 없는 내 전업 작가 생활을 걱정한 것이다. 그 목소리가 호면 저편의 먼 산잔등처럼 아득하다. 우리가 ‘회사’라고 발음할 때, 그건 언제나 ‘지금 여기’를 뜻했는데. 대답 대신 나는 호수 너머의 애꿎은 산등만 계속 쏘아본다.

새책 나오면 꼭 연락 주고 놀러와요. 네, 꼭 그럴게요. ⋯⋯그러고서는 1년이 훌쩍 또 흘러 버렸다. 빈손으로 뵈러 가기 멋쩍어 하느라 약속이 빈말로 쪼그라드는 중이다. 부지런히 써야겠다. 다음에 춘천 가면 사명산이나 삼악산 근처에서 점심을 먹자고 해야겠다. 소양호 건너편, 옛 대부도 울타리처럼 아스라이 굽이진 바로 그 산들.

 

 


by. 임재훈 https://brunch.co.kr/@jetlim/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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