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마 내게 하지 못했던 엄마의 말들이 들리는 듯한 소설, <딸에 대하여>
김혜진 작가의 소설 <딸에 대하여>는 스무 살 무렵 훌쩍 독립해 버린 딸 그린이 30대가 되어 그녀의 파트너 레인과 함께 다시 엄마의 집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요양보호사로 치매 노인을 간병하는 엄마는 퇴근과 동시에 느껴지는 뼈마디의 통증과 피곤을 안고서도 딸 걱정을 멈출 수 없습니다. 엄마는 딸이 젊음을,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생각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딸을 이해해 줄 수도, 포용해 줄 수도 없는 그녀는 딸과 파트너의 관계를 외면했다가 타박했다가 협박하는 방식으로 꾹꾹 눌러왔던 자신의 무거운 마음을 드러냅니다.
엄마와 딸은 이미 서로를 이해시킬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 버렸습니다. 괜찮은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며 사는 것.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걸 딸아이는 왜 거부하는 걸까요? 딸과 그 파트너라는 아이는 도대체 삶을 무어라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도저히 말도 되지 않는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하는 딸을 엄마는 절대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레인(딸의 파트너)에게 안 좋은 소리를 퍼부어서라도 둘 사이를 떼어 놓고 싶습니다.
소설 속에서 엄마는 자신의 미래, 그리고 딸의 미래일지도 모르는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간병하고 있는 치매 노인 젠입니다. 딸의 현재 선택(동성애)의 결과로 맞게 될 필연적인 미래를 상징하는, 철저하게 홀로 남은 치매노인 젠. 젊은 날 작가이자 인권 운동가로서 빛났던 그녀의 업적은 상자 속에 처박혀버렸고, 이젠 그저 이 요양병원에서 저 치매병원으로 강제 이송되며 삶의 마지막 날에 다가가고 있는 젠을 보면 마치 삶의 뒤켠으로 밀려나고 있는 자신의 미래가, 남편이나 자식도 없이 홀로 될게 뻔한 딸의 훗날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한 통의 갑작스러운 전화로 엄마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곳이라 생각했던 딸의 세상에 한 발자국 다가가게 되고, 내리치는 비 속에서, 소리치는 사람들 속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구급차 소리와 출동한 경찰들의 외침 속에서 버티고 서있는 딸을 목격하게 됩니다. 엄마는 그 순간 제대로 딸을 보게 됩니다. 딸이 잘못된 곳에서 소중한 시간을 허황되게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 위에서 치열하게 그만의 삶을 살아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엄마는 더 이상 ‘세상일이라는 게 별 수 없다‘는’ 타인의 잣대를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이 삶 자체가 ’내 딸의 일‘이며 바로 내 일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선 자신의 미래이며 딸의 미래일 수도 있을 쓸쓸한 젠의 현재를 덥석 잡아 자신에게로 끌어당깁니다.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사회가 방관하고 은연중에 강요하는 젠의 불행한 미래를 날카롭게 거부하고 생의 끝맺음을 향하는 젠의 옆에 서서 그녀의 마지막 날들을 돌보기를 선택함으로써 젠과 그녀(엄마), 그녀의 딸, 그리고 딸의 파트너까지도 포함한 모두의 미래를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by. 이고 https://brunch.co.kr/@6cfbca553ce94d5/6
(위 글은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행복한가 이 외의 공간에 무단 복제 및 도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됨을 알려드립니다.)
: 차마 내게 하지 못했던 엄마의 말들이 들리는 듯한 소설, <딸에 대하여>
김혜진 작가의 소설 <딸에 대하여>는 스무 살 무렵 훌쩍 독립해 버린 딸 그린이 30대가 되어 그녀의 파트너 레인과 함께 다시 엄마의 집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요양보호사로 치매 노인을 간병하는 엄마는 퇴근과 동시에 느껴지는 뼈마디의 통증과 피곤을 안고서도 딸 걱정을 멈출 수 없습니다. 엄마는 딸이 젊음을,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생각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딸을 이해해 줄 수도, 포용해 줄 수도 없는 그녀는 딸과 파트너의 관계를 외면했다가 타박했다가 협박하는 방식으로 꾹꾹 눌러왔던 자신의 무거운 마음을 드러냅니다.
엄마와 딸은 이미 서로를 이해시킬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 버렸습니다. 괜찮은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며 사는 것.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걸 딸아이는 왜 거부하는 걸까요? 딸과 그 파트너라는 아이는 도대체 삶을 무어라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도저히 말도 되지 않는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하는 딸을 엄마는 절대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레인(딸의 파트너)에게 안 좋은 소리를 퍼부어서라도 둘 사이를 떼어 놓고 싶습니다.
소설 속에서 엄마는 자신의 미래, 그리고 딸의 미래일지도 모르는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간병하고 있는 치매 노인 젠입니다. 딸의 현재 선택(동성애)의 결과로 맞게 될 필연적인 미래를 상징하는, 철저하게 홀로 남은 치매노인 젠. 젊은 날 작가이자 인권 운동가로서 빛났던 그녀의 업적은 상자 속에 처박혀버렸고, 이젠 그저 이 요양병원에서 저 치매병원으로 강제 이송되며 삶의 마지막 날에 다가가고 있는 젠을 보면 마치 삶의 뒤켠으로 밀려나고 있는 자신의 미래가, 남편이나 자식도 없이 홀로 될게 뻔한 딸의 훗날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한 통의 갑작스러운 전화로 엄마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곳이라 생각했던 딸의 세상에 한 발자국 다가가게 되고, 내리치는 비 속에서, 소리치는 사람들 속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구급차 소리와 출동한 경찰들의 외침 속에서 버티고 서있는 딸을 목격하게 됩니다. 엄마는 그 순간 제대로 딸을 보게 됩니다. 딸이 잘못된 곳에서 소중한 시간을 허황되게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 위에서 치열하게 그만의 삶을 살아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엄마는 더 이상 ‘세상일이라는 게 별 수 없다‘는’ 타인의 잣대를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이 삶 자체가 ’내 딸의 일‘이며 바로 내 일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선 자신의 미래이며 딸의 미래일 수도 있을 쓸쓸한 젠의 현재를 덥석 잡아 자신에게로 끌어당깁니다.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사회가 방관하고 은연중에 강요하는 젠의 불행한 미래를 날카롭게 거부하고 생의 끝맺음을 향하는 젠의 옆에 서서 그녀의 마지막 날들을 돌보기를 선택함으로써 젠과 그녀(엄마), 그녀의 딸, 그리고 딸의 파트너까지도 포함한 모두의 미래를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by. 이고 https://brunch.co.kr/@6cfbca553ce94d5/6
(위 글은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행복한가 이 외의 공간에 무단 복제 및 도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