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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희아-언니의 그늘

    By 행복지기

    나는 참 단순하고 매사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어렸을 때는 모범생에 우등생인 언니의 그늘에 가려 그만큼의 관대함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반면 두 살 터울의 언니는 보수적이고 완벽주의자이다. 계획표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그에 맞춰 생활하는 것을 기본으로 공부도 인성도 배운 그대로 지켜나가는 부모님이 원하는 딸로, 선생님이 기대하는 학생으로 자랐다.

    나는 계획과는 무관한 생활로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아빠 구두를 닦아 놓거나 어깨를 주무르며 코맹맹이 소리로 얻어내곤 했었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마음먹었던 때가.

    두 살 터울이다 보니 같은 학교를 다녀야했고 학년이 바뀔 때마다 담임선생님은 언니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만큼의 기대를 걸었다. 특히 닮아도 너무 닮은 외모 탓에 밖에 나서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매라는 것을 다 알아봤다. 그게 어린 나에게는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그 때부터 등, 하교를 할 때 언니와 같이 가지 않았고 학교 안에서 어쩌다 마주쳐도 모른 척 지나쳤으며 언니와 반대되는 행동을 함으로써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곤 했다. 학생은 단정해야 한다며 머리를 묶고 다니는 언니에 반해 짧은 단발머리로, 처음 구입했을 때의 넉넉함 그대로인 교복도 정갈하게 입는 언니에게 터질 듯 줄여 입은 교복을 보란 듯이 보여주고, 그럼으로써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엄마의 호된 꾸지람과 야멸찬 회초리가 남긴 선명한 자국, 그리고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버린 교복이었다. 그러면 언니는 동그래진 눈으로 엄마로부터 나를 구해주고 달래주었다. 그게 더 싫었다. 분명 언니도 나처럼 스스로 생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 텐데 부모님이나 다른 이들의 기대와 바람을 우선으로 자신만의 틀에 갇혀 지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면 언니는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늘 정갈한 모습 그대로 걷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입시로 언니와 다른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나는 언니의 그늘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쾌재를 불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전념했고 문과인 언니와 반대로 이과를 택했고 그에 따라 대학교도 달라 나는 완전히 언니의 그늘로부터 벗어났다고 여겼다.

    대학 4년 동안 가장 큰 문제는 통학이었다. 새벽 540분에 첫차를 타고 전철에 스쿨버스를 갈아타며 족히 2시간 반 정도의 통학 시간. 거기에 하교 할 때 퇴근시간이라도 겹치면 세 시간도 훌쩍 넘어, 그야말로 전투적인 날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도 지각은커녕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4년 내내 성적장학금을 받아 부모님을 놀라게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동안 언니의 그늘 안에서 지내며 나도 모르게 언니로부터 삶의 기본에 대해 배워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언니의 그늘로부터 벗어나려하면 할수록 언니의 그늘이 주는 넉넉함과 든든함을 즐겨왔다는 것을, 답답하게 여겼던 언니의 올곧음이 내 삶의 기준점이 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내가 언니에게 그늘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도. 앞으로는 언니와 내가 서로에게 그늘이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