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더하기 > 정보나들이

정보나들이

생활정보를 제공합니다.

  • 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

    #시어머니 #B급며느리 #고부관계


    영화 감독 선호빈·김진영 부부

    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

    감독의 담담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모습에 통렬하게 한 방을 날린다. 영화는 실제 감독의 집에서 벌어진 고부 갈등을 담은 리얼 다큐멘터리이다. 대학교 선후배로 만나 2년간 연애하고 결혼한 선호빈·김진영씨는 올해로 결혼 7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단순히 결혼 생활이 아닌,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투쟁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견고한 고부 관계에 김진영씨는 "오빠 부모님한테는 오빠가 효도해", "왜 날 존중하지 않아?"라며 끊임없이 질문하고 반기를 들었다.

    Q. 영화의 태생부터 독특하고 재미있다.
    김진영 어머니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쓸데없는 진실 공방 때문에 에너지를 소비하기가 싫었다. 분명 진실은 하나인데 각자 기억하는 것이 달랐다. 그러다 문제의 본질은 얘기하지도 못한 채 대화가 끝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내가 남편에게 증거로 영상을 찍으라고 한 것이다. 선호빈2013년 할아버지 제사 때 처음 찍기 시작해 3년 넘게 촬영했다. 촬영 분량만 700시간이 넘는다. 그런데 연출하고 찍은 것이 아니다 보니 막상 영화에 내보낼 만한 영상은 많지 않았다. 부모님이 카메라를 의식했다. 그래서 몰래카메라처럼 찍은 것도 있고, 카메라 배터리가 나가면 그때서야 본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했다. 하하.

    Q. 영화로 만들기 전까지 가족 아무에게도 영상을 보여주지 않은 이유는 뭔가?
    선호빈 ‘채증’의 용도로 찍긴 했지만, 그야말로 우리 가족의 암흑사다. 그 안에 행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보여주면 그때 일이 떠올라 다시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당연히 편집하는 나도 너무 괴로웠다. 고부 갈등 때문에 심리 상담까지 받았을 정도다. 심리 상담사가 내 얘기를 듣더니 전형적인 고부 갈등이라고 그러더라. 그 말이 왠지 위안이 됐다. 나만 괴로운 게 아니구나, 남들도 다 고통스럽구나 싶어서.

    Q. 막상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가족의 동의를 얻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선호빈 나와 진영이는 주변 시선을 개의치 않는 성격이라 괜찮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남들 보기 부끄러운 얘기로 무슨 영화를 만드느냐’는 게 이유였다. 며느리가 시댁에 오지 않는 게 창피해서 남들에게 며느리가 외국에 갔다고 거짓말을 하는 분들이니 말 다했지 뭐. 큰아들이 밥벌이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걱정인 분들에게 “이게 돈이 될 것 같다”고 하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1년 넘게 설득해 겨우 허락을 구했다.

    Q.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올해 초 1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회자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김진영 그만큼 고부 갈등에 대해 전 세대가 느끼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그 사이에 낀 남편은 또 남편대로 저마다 사연이 있듯이 말이다.
    선호빈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 가면 영화 얘기보다 본인들 얘기를 더 많이 할 때가 있다. 집집마다 할 말이 정말 많은 소재구나 싶었다. 어머니는 아직 영화를 안 보셨다. 전주국제영화제까지 오셨는데 도저히 못 보겠다고 나가시더라. 관객들은 재미있는데 당사자들이 힘든 영화다. 하하.

    Q. 처음 고부 갈등을 지핀 계기는 무엇이었나?
    김진영 모든 고부 갈등이 그렇듯, 사실 명확한 이유는 없다. 있다 하더라도 아주 사소하다. 시작은 아마 전화였던 것 같다. 시어머니는 걱정하는 마음에 하루에 예닐곱 번씩 전화를 하셨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문제로. 며느리에게 잘 해주시려는 의도는 알았지만 그게 어느 순간부터 일상에 방해가 됐다. 결혼하고 1년 정도는 며느리로서 최대한 맞춰드리려고 노력했다. 난 내가 겪는 갈등이 일반적인 고부 갈등인지, 아니면 내 성격이 독특해서 생긴 일인지 처음에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네가 며느리가 아니었다면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더라.
    선호빈 남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사려 깊은 분이 자식과 며느리에게는 달랐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한 행동이지만, 가깝기 때문에 더 강압적으로 대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전의 난 부모님과 맞지 않는 일이 있으면 줄곧 회피했다. 앞에서는 “네, 네” 하고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거다. 그게 삶의 지혜라고 생각했다.

    Q. 특히 여자들은 출산과 육아를 겪으면서 더 예민해지는 면이 있다. 많은 며느리가 그 시기에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는 것 같다.
    김진영 본격적으로 고부 갈등을 겪기 시작한 것도 아들 해준이가 태어난 뒤부터다. 대부분의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면 알게 모르게 피해망상을 겪는다. 오로지 아이를 위해 내가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아프면 내 걱정을 하기보다 “그럼 아이는 어떻게 돌보니” 물어보고, 배불러서 밥을 안 먹어도 “그럼 젖이 안 나오잖니” 한다. 결혼은 물론 출산과 동시에 지금까지의 내 삶, 나라는 존재는 하루아침에 사라진 채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길 강요받는 기분이었다. 오로지 아내, 며느리 역할만 해야 한다는 메시지 같았달까. 선호빈 며느리를 힘들게 하는 건 육체노동보다는 감정노동인 것 같다. 어른들에게 공손해야 한다, 예쁨 받는 행동을 알아서 척척 해야 한다 등 끊임없이 잘 보여야 하는 존재인 거다. 평생 할 말은 하고 살아온 진영이에게 그건 무척 힘든 일이었다.

    Q. 진영 씨의 집안 분위기는 어떤가?
    김진영 네 자매 중 내가 둘째고 나머지는 결혼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라’고 가르쳤다. 가끔 아버지가 우릴 혼내거나 지적할 때 “네, 네” 이러면 더 혼내셨다. 차라리 “아빠, 이건 잘못 된 거 아니에요?” 하면 “역시 내 딸, 그렇게 할 말은 해야지” 하면서 기분 좋다고 고기 사주시고 그랬다. 하하. 할 말 못하고 울면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써서 내라고 했다. 그것 때문에 밤을 새운 적도 있다. 그런 아버지의 양육 방식이 지금의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런 나의 아버지가 합리적인가 묻는다면, 글쎄.하하.



    Q. 고부 갈등을 느끼면서도 유독 밝은 진영 씨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김진영 결혼 후 처음 느낀 건, 지금까지 각자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의 가치관과 의견을 공유하면서 인생을 조율해야 하는데 시부모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남편과 맞춰가는 일보다 시부모님과 원만한 관계를 맺는 일이 훨씬 중요한 것처럼 돼버렸다. 가급적 시부모님과 부딪히지 않고, 그분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삶을 꾸리는 것이 내 결혼 생활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싫어서 시어머니와 겪는 갈등이 내 나머지 삶을 갉아먹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그 당시 경제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아이와 행복한 추억도 많이 쌓았고,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어머니에게 “싫어요”라고 말하는 건, 어머니와 더 나은 관계를 맺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었다.
    선호빈 아내가 어느 날 그러더라. 어머니 앞에서 “네, 네” 하는 건 결국 어머니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실제로 나보다는 아내가 더 어머니를 대화 상대로 인정한 것이다. 진영이가 바란 건 배려가 아니라 단지 자신이 낯선 사람이라는 걸 알아주고, 낯선 사람을 대하는 최소한의 매너를 유지해달라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됐다고 하루아침에 본인의 의지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Q. 요즘 시어머니들도 할 말이 많다고 한다. 며느리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라는 자조 섞인 말도 있다.
    선호빈 사실 그 말도 굉장히 폭력적이다. ‘며느리라는 존재는 원래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대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며느리는 우리 집에 처음 온 낯선 사람이고, 당연히 눈치를 봐야 한다.
    김진영 난 시어머니가 우리와 정말 가깝고 교류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길 바랐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룰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어머니는 나에게 없는 장점이 많다. 정이 많고, 상처가 됐던 말들도 사실 악의가 없다는 것도 안다.

    Q. 고부 갈등을 겪는 많은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진영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갈등이 있다는 건 기본적으로 그 관계가 개선될 여지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걸 인정하고 더 건강한 관계를 맺길 바란다.
    선호빈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우리 가족에게 아주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 비겁하고 우유부단했던 나에게는 그동안 너무도 당연히 여겨왔던 관습을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가 되었고, 어머니에게는 가까운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성찰할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진영이는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관계 맺기를 통해 좀 더 유연해진 면도 있을 거고.

    Q. 진영 씨는 여전히 이상한 여자, 이상한 며느리인가?
    선호빈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며느리의 모습을 정상이라고 한다면 이상한 게 맞다. 하지만 난 그런 아내가 좋다. 이 이상한 며느리도 언젠가는 당연한 며느리로 받아들여지겠지. 하하
    김진영 어른의 권위를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도 수많은 인간관계 중 하나이고, 다른 관계처럼 서로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기본적인 룰이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앞으로도 한쪽에서만 강요하는 일방적인 관계는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 아마 우리 세대가 그 시작이 아닐까.


    Editor 김은향

     

    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4501753&memberNo=36054406&searchKeyword=%EA%B3%A0%EB%B6%80%EA%B0%88%EB%93%B1&searchRank=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