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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독립운동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다 2

    #삼일절 #영웅 #독립운동가

    - 김마리아

    한국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마리아는 정신여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1919년 귀국, 황에스터와 함께 각지를 돌며 독립사상을 고취하다 체포되었다. 복역 중 병보석으로 출감한 뒤 상하이로 탈출해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간부 등을 지냈다. 1923년 미국으로 건너가 파크대학교와 시카고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귀국하여 1935년부터는 마르타 윌슨신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여생을 그리스도교 전도사업과 신학발전에 진력하였다.


    - 황에스터


    황에스터는 1910년 이화학당 졸업 후 평양의 숭의여학교 교사를 지내면서 애국 사상을 고취하고, 동료 교사들과 함께 애국비밀결사대인 송죽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또 1919년 3.1 운동으로 많은 그리스도교인이 투옥되자 옥중 지사와 그 가족을 도울 목적으로 애국부인회를 조직해 총무를 맡아 의연금을 모집하고 전국에 지부를 확장하여 군자금을 모아 상하이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2년간 복역한 후 가출옥 한 후, 1920년 남편과 함께 중국 하얼빈으로 가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고 1952년 귀국해 전쟁미망인과 고아의 기술교육을 위한 한미기술학교를 설립하였다.


    - 정정화


                       사진 : 국가보훈처 

    한말의 독립운동가인 정정화는 3.1운동이 일어난 후 시아버지인 김가진과 남편 김의한이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망명하자 자신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하이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맡으며 독립자금을 조달하는 밀사를 맡았다. 1920년 비밀연락망인 연통제를 통해 국내로 잠입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연통제가 폐쇄되자 야음을 이용해 압록강을 건너 밀사 역할을 수행했다. 임시정부 김구로부터 한국의 잔다르크라는 칭송을 받았다.

    - 박차정


             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사진 : 국가보훈처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인 오광심은 1931년 조선혁명당에 강비하여 유격대 지항연락공작원으로 활동하였다. 1935년에는 민족혁명당 부녀부 차장으로, 1936년에는 대한민국대국부인회 간부로 활동하였다. 1940년 광복군에 입대하였고, 제3지대장인 김학규와 함께 제3지대 간부로 광복군 선전 활동을 담당하여 초모, 선전, 파괴 등의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오광심의 남편 역시 독립운동가인 김학규이다.

    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487027&memberNo=15460571&vType=VERTIC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