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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칠한 사춘기 자녀와 싸우지 않고 대화하는 법

    #사춘기 #청소년


    부모의 아픔
    아이의 '성장통', 부모의 '성숙통'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
    아이의 성장은 집 밖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학원에서의 배움이 전부는 아니다. 집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 집에서도 몸과 마음은 성장한다. 성장이란 하나의 틀을 벗고 새로움으로 나서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 이를 흔히 ‘성장통’이라고 부른다.

    부모는 어른이다. 어른은 변화가 없을까? 아니다. 성장과는 다른 ‘성숙’이라는 변화를 겪는다. 어른은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가는 성숙의 노력을 할 때 비로소 어른답다. 부모의 성숙은 사회 속에서만 이루어질까? 그렇지 않다. 평소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늘 곁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성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가정이야말로 성숙에 중요한 장소다.

    우리는 보통 집에서의 성장과 성숙을 무시한다. 쉽게 여긴다. 이제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아이가 ‘성장통’으로 고생하고 있고, 부모가 ‘성숙통’을 겪고 있다면 그 고통의 근원을 학교나 사회가 아닌 가정에서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곳에 눈 돌리기 전에 우선 가정에서의 자기 위치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다.

    집에서는 서로가 신뢰하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화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가정에서조차 마음 터놓고 말하지 않는 아이와 부모에게 성장통과 성숙통은 오로지 고통으로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지향점을 지니고 있는지, 그곳으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서로 무엇을 도와야 할지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성장과 성숙의 고통이 결국 아름다운 결말을 맺으려면 부모와 아이가 가정에서 자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조차 빈말이 난무해서는 곤란하다.

     

     


    한 번만 솔직하게 사과할 수 있다면
    아이가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엄마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반응도 안 한다. ‘이럴 때는 아빠가 나서야지!’라고 생각한 당신, 아이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이는 아빠가 들어왔는데도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게임만 계속한다. 화가 나서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라고 소리를 빽 질렀더니 아이가 “에잇” 하면서 옷을 대충 걸치고 현관문을 나서려 한다. 화가 난 아빠가 말한다.

    아빠 : 이 한심한 놈아, 쓰레기 같은 자식아! 너 같은 놈은 나가 죽어야 해!

    뒤돌아서 아빠를 보며 서늘한 눈빛으로 대답하는 아이의 말에 아빠는 귀를 의심한다.

    아이 : 정말 아빠가 말한 대로 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 너무 어이가 없어진 아빠는 방 안에 들어가서 기도를 했단다. 다시는 아이에게 함부로 욕하거나 험한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루, 일주일, 그리고 한 달이 지날 때까지 그 약속을 잘 지켰다. 아빠가 욕을 하지 않으니 이상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던 걸까, 아빠 눈치를 보던 아이가 물어보더란다.

    아이 : 아빠, 왜 욕을 안 해요?

    이때 아빠는 자신이 심한 말을 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단다.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진심을 다해서 말이다. 조용히 듣던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고 이렇게 말하더란다.

    아이 : 아빠, 고마워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저에게 한 번이라도 칭찬해준 적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아빠가 진심으로 미안함을 표현하자 그때부터 아이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개그우먼이 겪은 아들과의 일을 각색한 이야기다. 그녀는 이런 대화가 오가는 동안 아이의 소중함을 알았고, 또 그 과정에서 자신도 아이와 함께 성숙해졌다고 한다. 다행이다.

    가끔은 자녀가 실망감을 안겨주고 서운하게 해도 절대 아이에 대한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포기해서는 곤란하다. 아이는, 그렇다, 여전히 착하고 사랑스럽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달라졌다고 해서 당황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더 아이의 아픔에 공감해야 한다.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는 오로지 사춘기 아이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염두에 둔 대화로써만 가능하다.

    대화란 그저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대화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뭔가를 배우기도 하고 자신에 관해 알리기도 한다. 그런데 사춘기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 관해 남에게 알리는 것을 어색해한다. 아무리 성격이 활달한 아이라고 해도 사춘기에 들어서면 갑자기 내성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심리학 전문가는 “사춘기 아이들은 마치 관객들 앞에서 사정없이 쏟아지는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서 있는 배우처럼, 자신이 늘 모든 사람에게 주시받고 있다고 느끼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남의 이목을 꺼리는 대부분의 사춘기 아이들은 그런 시선을 받기보다 차라리 무대의 막을 내리고 부모가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버리는 선택을 하기 쉽다. 보통 아빠들이 아이와 그 내용을 떠나서 대화 자체를 하기 힘들어하는 이유다. 이런 아이들에게 가시 돋친 말을 했다면 먼저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말이 아이에게 얼마나 상처를 줬는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기다리기 힘들지만 기다려야 하는 이유
    사춘기에 접어들면 독립 욕구가 강해진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자녀는 성장하고 있으며, 그 성장에는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홀로 서는 과정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사춘기 아이들의 말을 잘 살펴보라.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투의 짧은 단문이 대부분이다.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좀 내버려둬.”

    “짜증 나.”

    “귀찮아.”

    이 말을 일방적인 소통 거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소통을 원한다는, 다시 말해 부모가 제시하는 일방적인 소통 형태를 거부한다는 뜻임을 알아야 한다. 사춘기 아이가 독립을 원하는 말투를 사용한다면 그 저항에 맞서기보다 ‘아, 이제 내 아이가 엄마, 아빠의 도움이 정말로 필요한 때가 되었구나!’라고 깨달아야 마땅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부모의 도움이 절실한 시기가 왔음을 알아채야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은 남에게 자기 생각을 말하기 전에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기를 선호한다. 성숙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 이때 부모는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아이의 말이 부모가 원하는 수준에 못 미치더라도 기다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3초를 기다려라, 10초를 기다려라 하는 식으로 조언한다. 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최소한 1분 이상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 여유가 필요하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를 헤아려야 한다.

    사춘기 아이의 말에 섣불리 대응하려다가 대화 자체를 단절시키는 우를 범하지 마라. 시간 여유를 두고 생각하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후에 대화를 이어나가자. “왜 그랬냐?”고 이유를 따져 묻기보다, 언성을 높이며 비난하기보다, 아이에게 발생한 문제의 해결책을 지금 당장 찾겠다고 아이를 닦달하기보다, 잠시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우선 관찰해야 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와 자신의 감정을 찬찬히 관찰하기만 해도 언어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부모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기다림, 아이의 감정을 헤아리는 기다림,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어려워도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자녀와의 대화를 원활하게 만든다.

    자녀가 상처받지 않는 부모의 말투: 까칠한 사춘기 자녀와 싸우지 않고 대화하는 법 (저자 : 김범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