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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정보

나와 가족의 뿌리를 알아보아요.

    • 성씨문(文)

      본관남평

      주요인물문익점,문재인,문성근,문소리,문희준,문채원,문근영

      #문재인 #19대대통령

      유래
      시조 무성공(武成公)은 전남 나주시 남평읍 풍림리에 있는 장자지(長者池) 옆 문암(文巖)에서 오색구름이 감돌면서 태어났다고 전해오고 있다.
      군주께서 양육하니 문사와 무략이 뛰어나 글월文자를 성으로 하고 이름을 다성(多省), 자를 명원(明遠), 호를 삼광(三光)이라 하였다.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오르고 남평개국백(南平開國伯)에 봉하고 무성(武成)의 시호를 받았다. 무성공이 탄강한 바위를 문암(文巖)이라 하고 문암을 보호하는 문암각을 남평문씨의 발상지로 하여 장자지 옆 장연서원(長淵書院)에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후손 익(翼)은 고려 숙종조에 우산기상시를 지내고 아들 넷을 두었는데 맏이는 공인(公仁)이니 인종조에 수상의 지위에 오르고 시호는 충의공(忠懿公)이다. 둘째 공원(公元)도 수상의 지위에 오르고 의종묘정에 배향되고 시호는 정경공(貞敬公)이다. 셋째 가관(可觀)은 조계종 대선사이고, 넷째 공유(公裕)는 강직한 명필재상으로 시호는 경정공(敬靖公)이며 글씨는 묘향산 보현사기(妙香山 普賢寺記)로 전해지고 있다. 공유의 아들 극겸(克謙)은 고려조 일대의 명재상으로 시호는 충숙공(忠肅公)으로 명종묘정에 배향되었다. 극겸의 아들 후식(侯軾)은 신종때 대부경과 동북면 지병마사로 유필(惟弼)은 고종조 참지정사 판예부사를 지낸 명재상이다. 5대에 걸쳐 여러 명의 수상과 재상을 배출하고 귀족가문과 통혼함으로써 고려시대의 귀족 문벌가문이 되었다. 극겸의 손자 착(착)은 남제공(南濟公)으로 남제공파의 파조이고, 극겸의 5대 손인 근(瑾)은 판도판서(版圖判書)로 판도판서공파의 파조이며, 려말(麗末)의 달한(達漢)은 극겸의 6대손으로 찬성사를 지내고 순평군(順平君)으로 봉하였다. 극겸의 8대손인 구(龜)는 감천군(甘泉君)으로 감천군파의 파조이고, 극겸의 9대손 익겸(益謙)은 충혜공(忠惠公)으로 충혜공파의 파조이다. 익점(益漸)은 극겸의 9대손으로 공민왕때 목화씨를 전래하여 의류 혁명의 대공을 세운 명유(名儒)로 우문관제학(右文館提學)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증 영의정(領議政) 부민후(富民侯) 강성군(江城君)으로 봉하고, 시호는 충선공(忠宣公)이고 도천서원과 부조묘에 배향되었다.
      문씨는 고려조에는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나 조선조에서는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이 절의를 지키고 은거 불사한 영향을 받아 벼슬한 이가 고려종에 비해 적은 편이다. 문씨는 단일본으로 전국에 4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
      남평(南平)은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남평·산포(山浦)·금천(金川)·봉황면(鳳凰面) 등 동부지역 일대의 옛 지명이다. 백제의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 지역이었는데,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한 뒤에 미다부리정(未多夫里停)을 두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현웅현(玄雄縣)으로 고쳐 무주(武州: 光州)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남평군(南平郡: 永平郡)으로 바꾸었고, 1018년(현종 9)에 나주목의 관할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두어 독립했으나, 1390년(공양왕 2) 화순감무가 겸하여 통치하였다가 1399년에는 다시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으로 남평현이 되었다. 오산(烏山)으로도 불리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남평군으로 나주부 소속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의 관할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평군이 폐지되어 나주군(羅州郡)에 통합되고 1995년 통합 나주시가 되면서 나주시 남평면(南平面)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