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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정보

성씨별 유래를 제공합니다.

    • 성씨조(趙)

      본관횡성

      주요인물조계순, 조정립, 조충

      #조계순 #고려시대문신

      유래
      시조는 조익(趙翌)으로 조욱(趙昱)이라고도 하는데 고려사 연표에는 조익으로 적혀있다.중국 주나라의 목왕(穆王)이 서언왕(徐堰王)을 정벌할 때 조부(造夫)가 공을 세워 조성(趙城)에 봉해졌으므로 나라이름을 따서 성을 조씨라고 하여 조씨가 시작되었다 한다. 그후 주나라가 진나라 안국군(安國君)에게 망한 후 고려 정종 때 조첨(趙瞻)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고 한다.시조 조익(趙翌)은 조첨의 후손(일부 기록은 아들로 되어있음)으로 965년(고려 광종 9년) 처음실시한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벼슬이 한림학사에 이른 그의 품행이 깨끗하고 덕이 높아 광종이 횡성군에 봉함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횡성으로 하였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강원도 횡성
      횡성(橫城)은 강원도 남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인 475년(고구려 장수왕 63)까지 횡천현(橫川縣) 또는 어사매(於斯買)라 부르다가, 551년(양원왕 7)부터 신라의 권역이 되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황천현(黃川縣)이라 고치고 삭주(朔州: 春川)의 관할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다시 횡천으로 바꾸었고, 1018년(현종 9)에 삭주에 병합시켰다가, 후에 원주(原州)의 속현으로 하였다. 1389년(공양왕 1)에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13년(태종 13) 횡천현이 되었고,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627년(인조 5)에 현이 폐지되었다가 1636년(인조 14) 다시 복원되었고, 현이 폐지된 동안에 화전(花田) 또는 화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1760년(영조 36)에는 원주로부터 토포사(討浦使)가 이설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춘천부 횡성군이 되었고, 1896년 강원도 횡성군이 되었다. 1937년 군내면이 횡성면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79년에 횡성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