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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정보

성씨별 유래를 제공합니다.

    • 성씨염(廉)

      본관파주

      주요인물염상,염제신,염수정

      #염제신 #문신

      유래
      염씨의 시조는 중국 황제의 후손이다. 헌원씨 때는 공손씨라 했다가 희수지방에 이주 하면서 희씨로 성을 바꾸었다. 희창의의 아들 전욱의 증손이 대염씨라고 했다가 다시 왕보씨로 성을 바꾸었다. 그의 후손이 중국 하동으로 이주 하면서 염씨로 성을 바꾸었다.
      그후 호조판서에 이르렀던 염형명(廉邢明. 혹은 郊明, 郊明)이 신라 말기(후당 때)에 오계(五季)의 난을 피하여 우리나라 봉성(파주)에 들어와 살면서 파주염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후손인 염제신(廉悌臣. 시호 충경, 1304~1382)이 11살에 원나라에 들어가 고모부 말길(평장사)의 집에서 10년간 공부를 하고 정동성 낭중이되었다가 어머니 병환으로 귀국한 후 고려 충목왕 때 도첨의평리, 찬성사를 역임하고 공민왕 때에 좌우 정승을 거쳐 도첨의 문하시중에 이르러 곡성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리고 30여년 동안 많은 공적을 남겨 공민왕이 그의 공적을 가상히 여겨 친히 유상을 그려 주었는데 국립중앙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염씨의 본관은 처음에는 봉성이었으나 중시조 염제신이 곡성 부원군에 봉해지자 곡성으로 한 후 지명이 바뀌자 단원, 파주로 바뀌었다. 염씨는 기록에는 70여개 본관이 있으나 모두 같은 혈족으로 생각하고 있다.
      - 염제신의 묘는 경기도 장단군 강남면에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파주
      경기도 파주시(坡州市)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에는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과 술이홀현(述爾忽縣)을 설치했던 지역으로 옛 파주목과 교하군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각각 파평현(坡平縣)과 봉성현(峰城縣)으로 각각 개칭하여 내소(來蘇: 楊州)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파평현을 장단현(長端縣)으로 바꾸었고,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설치되면서 독립하였고, 1183년(명종 13)에 봉성현을 서원현(瑞原縣)으로 개칭하였다. 1398년(태조 7)에 서원군(瑞原郡)과 파평현(坡平縣)을 병합하여 원평군(原平郡)이라 하였고, 1415년(태종 15) 교하현(交河縣)을 원평군에 폐합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다. 뒤에 교하현은 다시 환원되었으나 도호부는 그대로 두었다. 1459년(세조 5)에 파주목(牧)으로 승격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에 본 주(州)를 유행지소(遊幸之所)로 삼고 나머지 땅은 인접 고을에 소속시켰다. 1506년(중종 1) 다시 파주목으로 복귀되었다. 영평(領平)이라는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한성부 파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교하군이 폐지되어 파주에 병합됨으로써 임진강 하구인 서쪽으로 면적이 넓어졌다. 1945년 연천군 관할이었던 적성면(積城面)·남면(南面)을 편입하였으며, 1946년 남면을 양주군에 이관하였다. 196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단군(長湍郡) 군내면(郡內面) 조산리(造山里)가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1983년 관할 주내읍이 파주읍으로 개칭되었고, 1996년 파주군이 시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