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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산 안창호, 진정한 애국심

    #안창호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독립운동가

    민주주의적 민족국가 수립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사상가로, 독립협회, 신민회, 흥사단 등을 조직해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한 인물입니다.



    "자기 몸과 집을 자신이 다스리지 않으면 대신 다스려줄 사람이 없듯이 자기 국가와 민족을 자신이 구하지 않으면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책임감이요 주인 관념이다."

    안창호의 호는 도산으로 평안남도 강서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새로운 학문에 관심을 갖고 배우던 중, 청일전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청일 전쟁으로 조선이 두 나라 사이의 싸움터가 되어버린 것을 보고 이에 충격을 받아 서울로 올라오게 됩니다.


    1899년 고향에서 독립협회에 가입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교육에 대해 깊게 공부하고자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초등과정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조국 광복을 목표로 한 정치단체인 공립협회를 창립합니다.

    그 후 한국에서 을사조약으로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07년 비밀독립운동 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하게 됩니다. 1913년에는 흥사단을 조직하는데, 흥사단은 민족을 지도해 나갈 수 있는 인물을 배출하기 위한 단체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역사 깊은 단체입니다. 안창호는 독립운동의 물적 토대와 인적 토대의 기반을 다지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1919년 3.1운동 발발되자, 신속히 3.1운동의 소식을 전 세계에 알리는 외교활동을 진행하며 상하이의 임시정부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됩니다.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공원 폭탄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동우회라는 독립운동 단체 사건으로 재투옥되고, 1938년 병으로 보석되어 휴양 중 사망하였습니다.

    안창호는 민족에 대한 책임감과 독립된 국가의 주인의식을 강조했으며, 개인주의를 중시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개인주의란 이기주의에 가까운 모습이 아닌 자신 개인의 이성과 판단에 근거한 개인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조직의 힘은 민족의 개개인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건전한 개인주의에서 진정한 민족의 힘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런 그의 기본 사상은 자주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정신으로 오늘날에도 민중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니, 관용하는 자가 잘못하는 자보다 더 죄다"

     


     

    당장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면 나랏일을 나 몰라라 하고 계시진 않으신가요? 집은 자신이 관리해야 하듯, 나라를 다스림에도 국민의 애정 어린 관심이 필요합니다. 혹시 이런 관심을 그동안 우리가 소홀히 하고 있진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