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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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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직 나라만을 위한, 충무공 이순신

    #이순신 #충무공 #명량해전


    이순신
    조선의 명장

    조선시대 장군으로 임진왜란에서 수군을 이끌고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어 왜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무릇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이순신은 30세가 넘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서게 됩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 해역으로 출정해 왜군과의 해전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천해전에서는 왜선 13척을 격침시키고, 당포해전에서는 왜선 21척을 불태웠으며, 당항포해전에서는 왜선 26척을 격침시켰습니다. 이런 잇따른 승리로 이순신은 정 2품으로 승진하였습니다.

    이순신에게 잇따라 패한 왜군은 수군의 모든 역량을 전라도로 집결해 맞서려 했습니다. 이에 이순신은 왜군을 모두 한산도로 유인해 50여 척의 왜선을 격파하는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를 한산도대첩이라고 합니다. 이순신은 1593년 8월 한산도로 본영을 옮기고, 9월에는 삼도수군통제사(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수군을 총지휘하는 관직)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왜군을 공격하라는 명을 내렸으나, 이것이 왜군의 계략임을 간파한 이순신은 출정하지 않았고, 그 책임으로 파직되어 한양으로 압송됩니다. 1597년 4월 이순신은 한 달 가까이 투옥된 상태에서 혹독한 문초를 받았고, 백의종군(벼슬이 없는 말단 군인으로 전쟁터에 참가) 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순신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왜군에게 대패하면서 전사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고, 그때 이순신에게 남아있는 전력은 13척의 배였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130여 척의 왜군에 맞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500여 척의 왜군과 싸워 200여 척의 적선을 불태우는 큰 승리를 거두었으나, 적선을 추격하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하게 됩니다.

    "혼자 다락 위에 기대어 나라의 형세를 생각하니 아침 이슬처럼 위태롭기만 한데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인재가 없고 밖으로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으니 사직이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겠다."

     


     

    이순신이 이처럼 위대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모든 절망과 역경, 현실적인 상황, 내외부의 적들을 홀로 감내해가며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낸 성인(聖人)이었다는 점입니다. 이순신은 굉장히 청렴결백한 성격으로 조금의 부정행위나 부적절한 오해가 일어날 만한 일은 전부 기피하였으며, 싸우다 죽던 그 순간까지도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한 인물입니다. 

     

    일본의 무장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 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 장수 정도였을 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 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 날 며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 하는 장수로서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갔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