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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곡이이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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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이이
    유학자, 정치가

    조선 중기 예술가로 유명한 신사임당의 아들이며, 현재 오천 원권 지폐의 모델인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아침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밥 먹은 뒤에는 낮에 할 일을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내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정성껏 해야 한다. 싫증 내고 게을리하면 안 된다. 안 해야 될 일이라면 딱 끊어 버려 가슴속에서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율곡 이이는 1536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습니다. 

     

    율곡 이이는 3~4세 때부터 글을 배워 13세에 진사 시험에 합격하게 됩니다. 그 뒤 보통 사람들은 한 번에 붙기도 어려운 과거 시험과 승진 시험에서 모두 아홉 번이나 수석을 하게 됩니다.

     

    23세가 되던 해, 율곡 이이는 명성이 자자한 퇴계 이황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때 퇴계의 나이가 58세였습니다. 율곡 이이는 퇴계와 학문에 대해 문답하며 연을 지속하게 됩니다. 이후 26세부터 벼슬에 나가 정치에 참여합니다.


    율곡 이이는 47세에 <성학집요>이라는 책을 편찬합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변화하게 되며, 이를 교육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율곡 이이는 수많은 상소문을 써서 정치, 경제, 국방, 교육 등에 꼭 필요한 생각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격몽요결>, <시무욕조> 등의 책을 저술합니다.


    이조판서의 관직에 있었지만, 평생을 청렴결백한 태도로 대의를 위해 살아온 율곡 이이는 1584년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세상을 떠날 때조차도 빈곤하여 친구와 제자들이 돈을 모아 곤경을 면하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율곡 이이는 당시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과 폐단의 변화를 주장한 인물입니다. 국정을 도모함에 있어서도 개인이나 일부 지도층으로부터 하향식으로 수행될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말할 수 있게 하고, 공론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율곡 이이의 이념과 현실의 통합적 구상은 조선 중기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전개에서 성리설에 끼친 영향을 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율곡 이이의 성리 사상은 오늘날에도 유심과 유물, 주체와 상황, 그리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부터 조화와 발전을 도모하는 데에 새로운 방향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율곡 이이의 이런 가르침들은 현대에도 크게 공감을 사고 있는데요, 특히 <격몽요결>에 수록된 인생을 망치는 8개의 나쁜습관은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율곡 이이의 <자경문>, <격몽요결> 등은 400년 이상이 된 교재들이지만, 이런 가르침들이 현재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이 [李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