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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유산

가문·인물이 전하는 지혜를 배워보세요.

  • 순흥 안(安)씨_근대의 독립운동 가문

    #애국 #역사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동촌 1리의 다른 이름. 조선 시대의 슬픈 역사 중 하나인 단종 복위 운동, 이 사건으로 순흥 안씨는 당대 최고의 명문가에서 평민으로 추락했으며 대부분의 순흥 안씨들이 순흥을 떠나 전국 각지로 흩어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마을 이름은 "피"가 냇물을 따라 흐르다 멈춰 "끝"난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으며, 단종애사를 통해 유명해졌습니다. 

     

    - 안자미
    : 고려 신종 때 흥위위보승별장을 지내고 신호위상호군에 추봉 되었습니다.
    영유, 영린, 영화 등 3형제를 두었고 각 1파 추밀공파, 2파 별장공파, 3파 교서공파 로 나뉘었습니다.


    - 안향
    : 안자미의 증손자로 1270년 삼별초의 난 때 강화에 억류되었다가 탈출하였으며, 이로 인해 그는 새삼 원종의 신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나라에서 주자서를 베껴오고, 주자학의 국내 보급을 위해 섬학전을 설치하는 함으로써 주자학이 크게 일어나 한국 주자학의 태두로 평가 되고 있습니다.



    - 안익태
    :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했으나 교장 선생님의 배려로 일본에 건너가 음악공부를 계속 하였습니다.
    1938년 아일랜드 국립 교향악단을 지휘해 <한국 환상곡>을 발표했는데, 이 음악이 1948년에 대한민국 정보가 수립되면서 국가로 지정 된 것입니다.


    - 안중근
    : 갑신정변 직후 해주를 떠나 신천군의 청계동으로 이사하여 성장하면서 8세 때부터 조부의 훈도로 한학과 조선역사를 배우며 민족의식을 키워 왔습니다. 부친의 가르침으로 근대적 사고와 숭무적 기상을 지닌 민족 청년으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1909년 10월 26일 한국 침략의 원흉이자 동양평화의 파괴자인 이토가 의사의 총탄 세례를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하게 됩니다.
    1910년 2월14일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모친은 " 사형이 되거든 당당하게 죽음을 택해서 속히 하느님 앞으로 가라"는 모친의 말을 새기고 공소를 포기 한채 1910년 3월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을 맞이 했습니다.



    - 안창호
    : 1907년 "대한사람은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하는 애국계몽 운동을 펼쳤습니다.
    신민회, 대성학교 설립을 통해 실력양성 및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힘을 썼습니다.
    그의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민족 실력양성이라는 노선은 높이 평가되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을 발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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