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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최 씨_절세의 명문

    인물

    #최씨 #명문가


    경주를 본관으로 신라의 석한 최치원을 시조로 합니다. 26파로 나뉘며 그 중 관가정공파, 광정공파, 정랑공파, 사성공파, 화숙공파, 충렬공파 등 6대파가 주축을 이룹니다.




    - 최치원
    :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 입니다. 12세의 나이로 당에 유학하여 6년 만에 당의 빈공과에 장원 급제 했습니다.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절도사 고병의 막하에서 <토황소격문>을 지어 당 전역에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승무랑 시어사로서 희종 황제로부터 자금어대를 하사받았습니다. 귀국하여 헌강왕으로부터 중용되어 왕실이 후원한 불교 사찰 및 선종 승려의 비문을 짓고 외교 문서의 작성도 맡았으며, 시무 10여 조를 올려 아찬 관등을 받았습니다.

    - 최승로
    : 고려 초의 유학자, 문신 입니다. 성종 1년(982년) 정광·행선관어사·상주국이 되었는데, 6월에 왕명으로 시무책 28조를 올려 국가의 전반적인 면에 걸쳐서 폐단의 시정과 새로운 제도의 제정을 건의하여 고려 왕조의 기초 작업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불교 세력의 지나친 횡포와 그로 인한 국가 재정의 손실을 지적, 이를 시정케 했습니다.




    - 최제우
    : 조선 말기 동학의 창시자이며 천도교의 창시자 입니다. 1860년 음력 4월 5일에 <천사문답>이라고 불리는 하늘님과의 문답 끝에 천주 강림의 도를 깨닫고 동학을 창시하였습니다. 동학은 서학에 대항하는 유교·불교·선교 등의 교리를 종합한 민족 고유의 신앙입니다. 후에 천도교로 발전하게 됩니다. 동학의 근본사상은 ‘인내천’(人乃天)으로 인본주의를 강조하면서, 성실과 신의로써 새롭고 밝은 세상을 만들자는 외침이었으며 어지러웠던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사상이었습니다. 또 모든 사람은 평등함을 주장하여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의병운동을 일으켰다가 관군에 체포되어 유배지인 대마도로 끌려가고 있는 최익현

    - 최익현
    :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의 정치인, 독립운동가,의병장이었습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반대하였고 개항 반대와 위정척사 운동을 전개하며 을사늑약 이후로는 항일 의병활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의병을 모집하여 거병하였으나 관군에게 패하여 대마도에 유배 되었습니다. 




    - 최시형
    : 조선의 종교인, 교육자, 사상가이며 1863년 최제우의 후임으로 동학의 제2대 교주가 됩니다. 
    1884년 갑신정변으로 정국이 소란하여 동학에 대한 탄압이 완화되자, 조직 강화에 힘써 육임제를 확립하고 전국에 육임소를 설치하여 종교로서의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일본군이 관군과 함께 농민군을 압박하자, 최시형 등은 처음에는 협상론인 화전론을 펼치다가, 마침내 현실상황의 급박함을 인식하여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고 북접을 전봉준의 무장투쟁 노선에 동참시켰습니다. 손병희 등이 이끄는 북접이 남접과 힘을 합쳐 봉기에 가담했습다. 


    마지막 최 부자 최준(오른쪽)과 그의 동생 최윤

    - 최준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기업인, 사회운동가, 교육인 이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주의를 실천하며 경주 최부잣집 12대 마지막 최부자 입니다.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 광복회에 거액의 자금을 제공하여 독립운동단체의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3.1운동이후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거액의 자금을 송달하기도 했습니다. 전 재산을 독립운동과 교육 사업에 투재했고, 일제 강점기때 백산상회로 활동하였습니다.